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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탈모 원형탈모는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몇 주 전, 자는데 머리가 굉장히 간지러웠던 기억이 난다. 내가 머리를 안 감고 자서 그런 거라고, 내일 일어나면 깨끗이 씻어야지 생각했다. 며칠간 간지러움은 지속되다가 어느새 괜찮아졌다. 얼마가 지나서 우연히 탈모를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시각적인 충격이 굉장히 커서 한참을 살펴보았던 것 같다. 그러고는 부정 단계, 어쩌면 이것은 원형탈모가 아니라 지루성두피염으로 인한 탈모일 것이라고. 두피가 불그스레해서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는 넘어갔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상태가 그대로길래, 오늘 아침 일찍 병원엘 갔다. 의사 선생님이 원형탈모 진단을 내리셨다. 두둥.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하였으나, 대수롭지 않지 않았다. 선고를 받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내가 문..
꿈에서 발견한 나의 분리 불안 최근에 어떤 꿈을 꿨다. 아마 낮에 아이가 미끄럼틀에서 위험할 뻔했던 날 인것 같다. 꿈에서 아이가 큰 미끄럼틀 입구에 혼자 앉아 있었다. "만복아 기다려! 엄마 금방 갈게!"라고 내가 외치는 순간, 아이가 휙 하고 내려갔다. 나는 얼른 뒤쫓아 미끄럼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중간에 네 가지 갈림길이 나오는 게 아닌가. 그중에 어렴풋이 아이의 뒷모습이 보이는 통로로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내려와 보니 아이는 없었고, 다른 아이들만 보였다. 나는 얼른 아이를 찾으려고 하는데, 미끄럼틀을 다시 거꾸로 올라갈 수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조급하게 두리번거리다 꿈에서 깬 듯하다. 이 꿈이 무슨 의미일까 여러 번 생각했다.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아이가 다칠까 염려하는 나의 불안이었나? 근데 ..
시간의 힘 육아를 하면 시간의 힘에 대해 너무 명확히 목도하게 된다. 우리가 어찌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대부분을 시간이 해결해 준다. 우리의 단조로운 하루하루가 한 생명을 어떻게 키워나가는지 두 눈으로 보고 느낀다.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그 시간에, 아이는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며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가 되어 간다. 주먹도 펴지 못하던 아기가 어느새 장난감을 쥐고 흔들고 있고, 자신의 몸도 어찌하지 못해 뒤집어진 벌레처럼 팔다리만 버둥거리던 아기가 이제는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열심히 바닥 수영을 하며 전진해 간다. 젖꼭지만 힘겹게 빨던 아기가 이제는 젖병을 쥐고 입에 넣었다 뺐다 장난치며 집어 던지기까지 한다. 이 모든게 1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일어나는 변화다. 근 1년동안 나는 어떤 스킬을 새롭게..
얼어붙은 여자 - 아니 에르노 "어머니는 지식과 좋은 직업이 남자들의 힘을 포함한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리라 믿었다." 55p. 어쩌면 내가 저렇게 믿고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지식과 좋은 직업이 남자들의 힘을 포함한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리라 그래서 그토록 생산성과 생존에 집착하며 지식과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 노력하였는가. 그래서 나는 보호받고 있는가. 나라와 시대를 불문하고 여자라는 종족으로써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단함을, 매우 현실적이면서 문학적인 문장들로 표현하여 섬뜩하리만큼 공감되었던 책. 동시에 공감된다는 것이 서글프게 하는 책. 자전적 소설에 대한 편견을 싹 사라지게 해 준 책. "시험은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지고, 누가 애를 돌볼까, 그 비용은 얼마나 될까, 수많은 걱정이 생긴다. 가능한 한 아주..
옛 떠돌이의 습관 나에겐 여러 가지 습관 혹은 취미가 있는데, 대부분 무엇인가를 '모으는' 것이다. 스티커를 수집하고, 볼펜을 사모으곤 한다. 그중 요즘 제일 골칫거리는 세면용품 샘플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대부분 유통기한이 훌쩍 지나버린 샴푸, 린스, 바디 샴푸 등인데 버리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고(?) 있다. 이 습관은 바야흐로 21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가족 중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게 된 나는 엄마와 남대문 시장을 가서 굳이 끌낭을 샀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크기는 요즘 도봉산 가는 등산객들 가방의 절반도 안되었다. 거기에 50일치의 짐을 싸려니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 유럽을 가는데 혹여나 샴푸가 없어서 못 씻게 될까 샴푸 샘플을 구하러 동네 화장품 가게들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여..
나를 믿는다는 것 - 나다니엘 브랜든 전자도서관으로 빌려본 책. 뷰어의 글자 세팅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너무 동시에 여러 책을 쫓기듯 읽어서 제대로 내용을 꼭꼭 씹어 보진 못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종이책으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저자가 내담자들을 대상으로 활용했던 '문장 만들기' 방법이 효과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으나 어색한 번역 때문인지 와닿지 않는 부분들도 많았던 것이 조금 아쉽다. 책의 마지막에 '자신감이 높아지면, '에 대한 문장 제시가 흥미롭다. 그 변화들의 중심에는 '긴장 이완'이 존재한다. 나를 포함한 현대인들에게 고질적인 '긴장'이라는 것이 결국 결여된 자신감에서 비롯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술을 그리도 찾는 이유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술은 사람을 이완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술을 ..
36살, 다시 시작해 보자 간사한 심리에 놀아나는 요즘이다. 집을 알아보기 시작한 이후로 맘 편히 잠들지 못하기를 수일밤. 그 염려가 극에 달 했을 때, 극적으로(?) 계약이 타결되었고 그렇게 이제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나라는 미련 덩어리는 그때부터 집값이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하기 시작한다. 지난 한 달 동안 집 문제로 골머리를 썩으면서 동시에 그런 나를 관찰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 모습이고 이전에는 어땠는지 내 지난 35년을 묵상하곤 했다. 특히 잠들기 전에 그랬다. 어린 시절엔 질투의 화신으로, 청소년기엔 관계(친구)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20대 역시 관계(이성)와 미래, 특히 진로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그 모든 고민과 힘듦의 원인은 결국 불안이며, 정확히는 실패에 대한 불안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