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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친정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잉잉, 앙앙" 잠에서 깬 아이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일단 시계를 확인한다. 너무 일찍 깼으면 조금 더 침대에 두고, 6시가 넘었으면 친정 엄마가 안방에 들어가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나는 더 자고 싶어서 모른 채 하지만 엄마가 이내 "네 엄마 여기 있다!" 하며 아이를 내 위에 턱 하니 올려놓는다. 그때부터 종일 아이 시중을 들며 하루를 보낸다.

밤새 오줌으로 묵직해진 기저귀를 갈고, 물을 먹이고, 밥을 먹이고, 똥을 치우고, 이리저리 쫓아 다니며 어질러진 물건을 정리하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일상이다. 그런데 최근에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바로 나와 엄마의 태도.

이 사건은 아이의 손바닥에서 시작되었다. 

아이가 태어났을때부터 나와 닮은 곳 찾기에 열을 올렸던 나는 잘 펴지지도 않는 손을 열심히 펼쳐 손금이라도 닮았나 살펴보았다. 꼬깃꼬깃한 아이의 손에는 손바닥 좌우를 횡단하는 굵은 선이 있었다. 특이하다 여겼지만 아직 아기라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두 손이 쫙 펴지는 지금도 손금은 그대로였다. 나는 그것을 엄마에게 보여줬고 엄마도 신기하다며 웃었다. 어느 날 엄마가 신이나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지인 중 명리학과 사주를 공부한 친구가 말하길, 아이 손금이 "모 아니면 도"의 아주 좋은 손금이란다. 일명 "막진(막쥔)손금"이라고, 아이가 대성할 거라며 손주에게 잘하라고 했단다.  

평소 점이나 사주를 믿지 않는 나에게는 그저 터부시 할 소리였다. 근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날부터 그 생각이 떠나질 않고 아이를 볼 때마다 떠올랐다. "훌륭한 아이, 큰 사람이 될 아이" 심지어 아이의 앞길에 방해되지 않게 더더욱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믿음, 희망이 나를 기분 좋게 하고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게 했다. 

사실 어디 이 아이뿐이겠는가. 

모든 아이들은 무궁한 가능성을 품고 있고, 아이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각자의 보석을 품고 있다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눈빛을 보내고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나는 스스로에게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살면서 나의 가능성을 믿어 본 적이 있었나? 생각하니 내 스스로에게 미안해졌다. 

오늘도 아이를 통해 나와의 관계를 조금 발전시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