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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과 비실용

어느 날 지인이 나에게 뜨개질을 할 줄 아냐고 물었다. 지인은 머리끈, 목도리 등을 짜서 고아원에 기부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다이소에 가면 천 원으로 괜찮은 장갑, 목도리, 모자 등을 살 수 있는데 굳이 손으로 짜서 주면 애들이 좋아할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의 이런 생각이 얼마나 소름 끼치는지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나는 어릴 때 손으로 만드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내가 지금까지 인생에서 무언가를 그렇게 몰입해서 했던 것은 그 시절, 만들기 밖에 없다.

뜨개질, 비즈공예, 리본공예, 매듭공예 등 종류도 다양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었고, 칭찬이나 돈을 바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그것이 너무 즐거웠고, 잘하고 싶었다. 

내 마음에 들 때까지 구슬을 꿰었다 풀었다 하길 밤새서 했다. 

그 이후로 무엇도 나에게 그런 열정을 일으키지 못했다. 

 

수능이 끝난 후 다시 내가 좋아했던 그것들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다. 

제일 큰 장애물은 "그거 만들어서 뭐 하게?"라는 내면의 질문이었다. 

가격이나 질 측면에서 내가 만든 수공예품이 공산품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나는 그 행위를 할 이유가 없었다. 단지 내 즐거움을 위해, 이 세상에 예쁜 쓰레기를 하나 더 늘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모든 행위들은 "실용"이라는 기준에 부합해야 했고, 그 어느 것도 나에게 기쁨을 주지 못했다. 

나는 행복하지 않은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런 문제를 깨닫고 일부러 실용적이지 않은 행위들을 하려고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구슬 꿰기보다는 당장 집을 치우고, 필요한 생필품 할인 정보를 찾는 일에 시간을 쓰곤 했다. 

 

24년 새해가 밝았다. 

여러 가지 많은 다짐을 해보게 되는데, 하나 더 추가를 해볼까 한다. 

비실용적인 시간들을 보내기로. 

최대한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기로.

그렇게 나 스스로를 생산성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대해주기로.